끊어진 기타줄을 보니 갑자기 기타가 치고 싶어진다. 몇주동안 쳐다도 안봤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무언가에 가장 집착했을 때는 그것을 갖기 전이었다. 사용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는 것에서 이미 90% 이상의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것들이 초반에만 열심히 쓰이고 그 다음엔 찬밥 신세다. 사기 전에는 정말 꼭 필요할 것 같고,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 하지만 사고 나면 아니다. 낚여도 참 잘 낚인다.
물건 뿐만이 아니다. 다짐도 얼마 못간다. 앞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처음 몇일은 열심히 쓴다. 정리도, 청소도 평소에 하기로 다짐한다. 미루다 미루다 한꺼번에 한다고 치우다 병이 난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꾸준함이 없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학년차는 올라가니까 더 조급해질 법도 한데, 마음엔 여유가 생긴다. 이게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변화인가? 난 30살이 되는 순간 스위치가 0에서 1로 켜지듯이 내 인생에 무언가 비연속적인 변화가 생길거라 생각했는데, 이것은 30대에 입성했을 때 날 심장마비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인가?
옛날엔 참 주절거리기도 많이 주절거렸는데 이젠 그것도 참 어렵다. 20대 초반엔 뭘 몰라서 혼자 잘난 듯이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것 같다. 내 말이 혹시나 미칠 영향력까지 계산하기엔 난 참 사려깊지 못한 아이였고 한마디로 개념없는 아이였다. 20대 중반 때 중용을 되찾는 듯 싶더니 20대 후반에는 소심함으로 너무 기울었다. 이젠 내 말이 혹시나 미칠 영향력을 필요 이상으로 계산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계산적이 되었다. 이런 기분은 싫었지만 남들도 그러기에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지 말아야 할 상자를 열어버린 기분. 먹지 말았어야 할 사과를 먹은 기분. 상자를 내 앞에 왜 갖다 놨지? 사과는 왜 줬지? 난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피해 의식이 나를 강하게 지배했던 시기가 내가 대학원 와서 말이 없고 조용한 편(?)이었던 암흑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신기하게도 3학년 때 기억이 없다...;; 이때가 암흑 시기였나.)
하지만 결국 마지막 선택은 내가 한 것이기 때문에, 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그러므로 피해자도 아니다. 올해 8월 어느 날, 집을 나서면서 친구에게 물었다. "더울까? 모자를 가져가야 할까?" 친구 왈, "모자까지 필요하겠어? 오늘 날씨 보니 구름도 좀 끼고, 괜찮을꺼야." 착실하게도 친구 말을 들은 나. 그 날 그림자조차 숨어버리신 뙤악볕 아래 멕시코 산골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모자를 안갖고 온 것을 정말 두고 두고 후회했다. 아침에 친구와 했던 대화가 머릿 속을 맴돌았다. 맴맴... 내가 그 때 그 말만 안들었더라도 ...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 알고 있었다. 정보를 종합해서 어느 한 의견에 치우치지 않은, 소신있는 선택을 내렸어야 하는 것은 바로 나라고. 난 편리하게도 내 결정권을 위임하고 있었다. 생각하기에 게을러져 있었다. 그날 내 얼굴이 새까맣게 탔을지는 몰라도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4일 뒤면 개학이다. 어느덧 개학이 별 의미없는 학년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적당히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줘야할 시기가 왔다. 이제 마음의 평안은 얻었으니 오래 가기를 바라고, 또 논문 생산적인 나날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